김청기 -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게 만화 얘기일까 영화 얘기일까 생각해봤는데 나는 김청기 감독 작품 중 우뢰매를 가장 좋아하니까 그냥 영화 얘기라고 치자.

인터넷이나 모임에서 틀딱들끼리 옛날 얘기를 할 때 곧잘 나오는 소재가 옛날 애들용 만화나 영화 같은 거다. 그렇다고 마징가 제트 같은 거는 좀 뻔한 데다가 연식이 너무 오래된지라 별로고, 주로 모래요정 바람돌이라든지 축구왕 슛돌이 같은 조금 미묘한 물건들.

그런 얘기가 나오다보면 이리저리 새다가 슈퍼 홍길동이나 우뢰매라든지 태권V 같은 얘기로 빠지곤 한다. 여기서 또 반응이 갈리는 게, 오프라인에서는 '야 ㅋㅋ 그거 마징가 배낀 거자너' 정도 선에서 얘기가 끝나는가 하면, 온라인에서는 갑자기 김청기가 표절을 했네 어쩌네 하면서 한마음 한뜻 촛불시위라도 하는 분위기가 된다는 거.







물론 루리웹 씹선비새끼님들께서야 원체 정의로우신 양반들이니 무슨 흠결 하나 용서가 될 리야 있겠느냐만은, 저것들을 제하더라도 요즘 인터넷 상의 전반적인 기조가 김청기를 위시한 예전 어린이 만화 내지 영화를 모두 흑역사로 몰고 가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문제다.

뭐 '문제다' 라는 표현이 또 불편하신 분들이 있기야 하겠지만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거는 박정희 논란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요는 당대에 그것을 겪은 뒤 돌이켜보면서 판단하는가, 아니면 그 이후에 태어나서 이런저런 사료를 보고 듣고 난 뒤에 판단하는가 정도. 나처럼 박정희 이후에 태어난 인간이지만 박정희를 좋게 보는(그래서 이런 글은 이글루 같은 데서밖에 못 쓴다. ㅇㅂ 같은 데에 써 봐야 똥글에 파묻힐 뿐이고)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단적으로 말해서 당시 김청기 작품을 실시간으로 즐겨보던 세대 중에 그 양반 작품 대부분이 일본제 표절이라는 걸 모르는 어린이들은 오히려 드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스페이스 간담V인데,

이 멋드러진 발키리가 나오는 만화는 수입된 비디오테이프로 마크로스라는 물건이 나오던 때보다 조금 일찍 등장하긴 했지만,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던 당시에는 동시 개봉이나 비슷한 거였고 모든 꼬맹이들은 이미 어 저거 마크로스다 라는 거를 눈치 까고 있었다.



무슨무슨 대백과 따위의 보급은 빼도박도 못할 증거품이었고... 일본이 미국을 잡아먹네 마네 하던 세계최강급 초강대국이었으니, 똑같이 생긴 일본제와 국산품을 내밀면 세살짜리라도 일제를 고르던 1980년대. 어른들끼리조차 미제 독일제 다 제끼고 히다찌 제품이 최고니 도시바가 제일이니(VHS 시대에는 위상이 쫌끔...) 했으니 설령 일본이 배낀 거였더라도 일본제가 오리지날일 수밖에.


그래서 다들 따라쟁이네 배꼈네 하면서 여윽시 김청기가 청기했구나 했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지금처럼 무슨 퇴출을 해야 하니 흑역사니 그런 건 아니었다. 따라한 건 따라한 거고, 재미가 있으면 흥했고 재미가 없으면 망했다. 그냥 모두가 그대로의 그걸 즐겼다. 배추머리 돈 자우서인지 사우저인지가 솔라원투드리인가 썬더A인가에 나오면 저 김병조를 어디 일본만화 대백과에서 봤던 거 같은데 음 모르겠고 만화는 재밌네. 그걸 보던 꼬꼬마들한테 그 이상의 고찰력과 시민 의식을 요구할 수는 없는 거였고, 어른들은 애들이나 보는 물건에 고나심이 아예 없었다. 일 하느라 바쁘던 산업 역군들의 시대였으니.

그러니까 이제 그 놈들이 나이 먹었으니 과거를 돌이켜보며 까야 한다? 별로. 우리는 그 때 그거대로 즐거웠고, 어차피 그런 것밖에 만들 수 없었던 조악한 시대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복잡시럽게 생긴 로보트 장난감을 찍어낼 능력이 없어서 금형을 일본에서 사오고 판촉용으로 그 표절 로봇용 만화를 만들었다고 하면 그게 자랑거리라고 떠벌일 수는 없지만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당시에 할 수 있을 만큼 한 거다. 물론 지금 그 짓거리를 한다면 똥을 한바가지 얻어맞을 짓이고...

'아!내가 그딴 걸 즐겨보았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쑤가 없다. 죽고싶다' 하는 사람들은 정 부끄러웁고 못살겠으면 반성문 쓰고 할복이라도하면 된다. 순수하게 즐기던 우리를 DHA 분유 먹고 자라서 머리도 훨씬 좋아진 젊은 세대가 비난할테면 하라 그래라. 같은 세대가 비난할테면 그것도 하라지. 우리가 당당하게 그 만화를 우리의 것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어도, 지금의 저작권 의식 따위를 30년 전까지 소급 적용할 것 같으면 우리 유년기에 저질렀던 수많은 과오도 소급해서 부모님께 쥐어 터져야 마땅하다.


문득 생각난 건데 김청기 이 아저씨는 태권브이를 비롯한 여러 작품 속에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아내기 일쑤였다. 다윗과 골리앗 같은 기독교 만화도 슴풍슴풍 찍어내고. 이런 부분이 아마 현재 주류 미디어 업계와 젊은 측에 더욱 반감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 본다.

덧글

  • 소시민 제이 2018/05/17 13:18 # 답글

    김청기의 진짜 흑역사는 바이오맨이죠.

    박중훈씨가 출현한 포르노 영화입니다!

    박중훈씨도 흑였사겠지만요.
  • 굶주린 늑대 2018/05/17 17:42 #

    바이오맨은 포르노보다는 그냥 성인액션물 정도가 ... ^^a

    태권브이에도 팬티 노출(판치라), 우뢰매에도 브래지어 강제 노출씬이 있을 정도로
    김청기 작품이 좀 야하죠.
  • 소드피시 2018/05/17 14:16 # 삭제 답글

    와 두번 읽었네요. 70년대 막바지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이렇게 공감되는 글을 찾기 힘든데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ㅁㅁㅁㅁ 2018/05/17 15:12 # 삭제 답글

    우뢰매 2탄에서는 외계인이 십자가 때문에 사망...
    귀신도 아닌데 왜 그렇게 되는지 어린 마음에도
    이해가 안되었더랬죠.
  • 굶주린 늑대 2018/05/17 17:39 # 답글

    김청기 감독 공과를 따지면 결국 과가 더 많지만,
    매카닉 디자인 도용 하나 만으로 김청기 작품을 단순 표절작으로 치부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생각합니다.

    김청기 감독 외에도 당시 대부분 애니메이션들이 디자인과 스토리를 도용했고,
    그나마 김청기 감독 초기작은 스토리면에서는 독창성이 있었죠.

    물론 어쩔 수 없는 당시 상황을 반영하더라도 수치적으로 많은 디자인 도용작,
    김청기 영향으로 아류 표절작이 넘치게 된 계기라는 점에서는
    최종적으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브이의 경우 태권브이 디자인이 문제라해도
    카프 박사라는 악당의 성격, 인간이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 메리, 디즈니 풍 자연묘사 등 여러 이점도 있고,
    무엇보다 1972년 '괴수 대전쟁' 이후 단절 된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활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존다리안 2018/05/17 18:53 # 답글

    사실 김청기의 제일 큰 문제는 애니메이터로서의 발전이 없었다는 거죠. ㅜㅜ
    디즈니가 미녀와 야수 이후로 히트작을 연이어 낸놓고 스튜디오 지브리도 명작들 쏟아내며 다른 애
    니메이터들도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극장판이나 소녀혁명 우테나 극장판같은 일획을 긋는 물건
    들을 쏟아내는데 산에서 도닦으며 만들었다는 애니가 임꺽정....

    퀄이 좋았다면 명작이었겠죠. 그러나 임꺽정은 치명적으로 퀄이 개망이었습니다. 차라리 국내 다른
    애니메이터들이 더 잘 만들고 있었어요.
  • 로가디아 2018/05/17 19:35 # 삭제 답글

    그때나 지금이나 심한 덕후인건 변함 없습니다
    그시절에는 솔직히 로봇 대백과 나 그런거 봐도 일본거라고는 생각도 안햇고 전부 미국거라 생각햇습니다
    그리고 김청기가 원조고 로봇대백과가 짝퉁 이라 생각햇습니다
    속고지낸 세월 한스럽습니다
  • 2018/05/17 19: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Fedaykin 2018/05/17 22:48 # 답글

    ㅋㄱㄲㄱㄱㅋㄱㅋ그러고보니 슛돌이는 한국인이었죠

    아 그때의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소세지봉으로 할복해야겠습니다 우걱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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